순결의 집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순결의 집은 조용한 산자락에 자리한 기독교 공동체 수련시설입니다. 세상의 소음에서 벗어나 기도와 묵상, 공동생활을 통해 스스로를 돌아보는 열나흘의 시간을 마련하였습니다.
본 수련은 운영 단체의 보수적 신앙관에 기초하여 성적 순결과 회개를 강조합니다. 모든 입소자는 정해진 교육 및 공동생활 규정을 따라야 합니다.
하루의 일과
수련 기간에는 규칙적인 기도와 교육, 묵상을 중심으로 생활합니다. 아래 시간표는 기본 운영안이며 시설 사정에 따라 조정될 수 있습니다.
입소자 생활 규정
순결의 집은 공동체의 질서와 영적 훈련을 위하여 다음 규정을 시행합니다. 입소자는 입소와 동시에 해당 규정의 적용을 받습니다.
공동생활과 복장
입소자는 지급된 흰색 단체 반소매 티셔츠를 착용하며, 숙소 및 공용 공간을 청결하게 유지합니다.
전자기기 보관
휴대전화 및 개인 통신기기는 입소 당일 운영진에게 제출합니다. 수련 기간 중 임의 사용은 허용되지 않습니다.
외출 및 외부 연락
개별 외출과 외부 연락은 원칙적으로 제한되며, 필요한 경우 담당 지도자의 사전 승인을 받아야 합니다.
입소자 간 교제
동성 입소자 간 신체 접촉, 특정 입소자와의 지나친 친밀감 및 사적인 애정 표현을 금합니다.
침실 이용
숙소는 2인 1실로 운영됩니다. 소등 이후 타인의 침실을 방문하거나 배정된 침실을 무단 이탈해서는 안 됩니다.
교육 참여와 성찰
모든 예배, 교육, 상담 및 회개 일지 작성에 성실히 참여해야 합니다.
규정 위반 시 지도
운영진은 규정 위반자에게 특별 회개 기도 및 반성문 작성을 지시할 수 있습니다. 반복 위반 시 별도 면담을 실시합니다.
입소 준비 안내
수련 기간 동안 개인 물품은 간소하게 준비해 주십시오. 기본 복장은 입소 당일 지급됩니다.
지급 물품 안내
가슴 부분에 십자가와 ‘순결의 집’, ‘몸과 마음을 정결하게’ 문구가 인쇄된 흰색 반소매 단체 티셔츠를 지급합니다. 성경 필사 노트와 회개 일지 또한 시설에서 제공합니다.
입소 절차 및 참가비
14일간의 숙식, 교육, 상담 및 기본 지급 물품이 포함된 프로그램입니다.
1인 기준 · 13박 14일
입소 신청 안내
입소 신청 기록을 아래에서 확인하여 주십시오. 아래에는 입소자 구휘가 작성한 신청서가 보관되어 있습니다. 내용을 확인한 후 자기소개서로 이동해 주십시오.
순결의 집 입소 신청서
14일 영성 수련 프로그램 · 입소자 작성용
※ 이 신청서는 가상의 인물 구휘가 작성한 소설 속 문서입니다. 연락처는 예시 번호이며, 실제 신청이나 개인정보 전송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입소자 자기소개서
순결의 집 · 사전 제출 서류 제2호
저는 구휘라고 합니다. 스물세 살이고, 작은 타투숍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직업을 말하면 대개 제 팔부터 보시더라고요. 오른팔에는 검은 뱀이 있고, 왼쪽 쇄골 아래에는 작은 십자가가 있습니다. 뱀은 제가 직접 도안을 그렸고, 십자가는 남이 새겨 줬습니다. 어느 쪽이 더 오래 남을지는 아직 모르겠습니다. 다만 둘 다 지울 생각은 없습니다.
저는 장로인 아버지와 권사인 어머니 사이에서 외동딸로 태어났습니다. 일요일 아침이면 누구보다 일찍 일어나 머리를 빗고 예배당으로 갔습니다. 성경 암송 대회에서 상도 받아 봤고, 어린이 성가대에서는 음을 자주 틀렸습니다. 찬송가 가사를 아직도 꽤 외웁니다. 십 년 가까이 교회에 나가지 않았는데도요. 사람은 잊고 싶은 것보다 익숙한 것을 오래 기억하는 모양입니다. 열여섯 살 때 같은 반 여자애를 좋아하게 된 뒤로, 기도할 때마다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더군요. 처음에는 제 마음을 바꿔 달라고 빌었고, 나중에는 그런 기도를 하지 않게 해 달라고 빌었습니다. 결국 기도 자체를 그만뒀습니다.
열여덟 살에는 첫 여자친구를 사귀었습니다. 그 애가 제게 준 것은 거창한 고백보다도, 추운 날 주머니에 넣어 준 귤 하나였습니다. 아직도 귤을 까면 그때 생각이 납니다. 제 기억력은 이상하게 중요한 시험 날짜보다 그런 사소한 일에 더 쓸모가 있습니다. 그 뒤로 몇 번 더 연애를 했고, 대부분 오래가지는 못했습니다. 제가 먼저 다가가는 건 쉬워하면서도 누가 제 곁에 오래 머물겠다고 하면 겁부터 냈던 것 같습니다. 이런 이야기는 수련원에서 좋아할 만한 내용이 아닐 테지만, 자기소개서에는 솔직하게 쓰라고 하셨으니 적습니다.
대학에는 가지 않았습니다. 대신 열아홉부터 타투를 배웠고, 지금은 제 이름으로 된 작은 가게를 운영합니다. 가게 문을 열면 가장 먼저 기계와 작업대를 닦습니다. 바늘과 잉크를 확인하고, 예약 손님의 도안을 다시 살펴봅니다. 제 손을 믿고 피부를 맡기는 사람에게 대충 하는 일은 없었으면 합니다. 말은 거칠어도 일은 꼼꼼하게 한다는 소리를 듣습니다. 손님이 긴장하면 쓸데없는 농담을 하기도 하고, 겁먹은 손님에게는 쉬어 가자고 먼저 말합니다. 어떤 손님은 돌아가신 반려견의 발자국을, 어떤 손님은 다시는 잊고 싶지 않은 날짜를 새기러 옵니다. 그럴 때면 제가 하는 일이 단지 그림을 그리는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쉬는 날에는 늦잠을 자거나, 편의점에서 아이스크림을 사 먹으며 동네를 걷습니다. 매운 음식을 좋아하지만 뜨거운 국물은 잘 못 먹습니다. 식물을 키우는 데는 소질이 없어서 작은 화분도 두 번이나 말려 죽였습니다. 대신 고장 난 물건을 그냥 지나치지 못합니다. 가게의 삐걱거리는 서랍도 직접 고쳤고, 친구의 끊어진 목걸이 잠금장치도 손봐 줬습니다. 사람을 고치는 재주는 없지만, 물건은 웬만하면 고쳐 쓰고 싶습니다. 제게는 오래 쓴 은색 피어싱 몇 개와 손때 묻은 스케치북이 있습니다. 스케치북에는 손님에게 보여 주지 않은 그림들이 더 많습니다. 특히 여자 얼굴을 자주 그립니다. 왜 그러는지는 굳이 설명하지 않겠습니다.
이번 입소는 제 뜻만으로 결정한 일이 아닙니다. 최근 부모님이 예전에 사귀던 사람과 찍은 사진을 보셨습니다. 그 뒤로 집에서 많은 말이 오갔고, 아버지는 제 가게 보증금에 보태 주신 돈을 돌려달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그 돈을 아직 한꺼번에 갚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열나흘 동안 이곳에서 생활하는 대신, 이후에는 제 삶에 간섭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았습니다. 입소 이유를 한 문장으로 쓰라면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라고 하겠습니다. 제가 무언가를 고쳐야 한다고 생각해서 온 것은 아닙니다.
그래도 여기 있는 동안 남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는 않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는 건 자신이 없지만, 해야 할 일은 하겠습니다. 성경을 필사하라면 글씨는 반듯하게 쓸 수 있습니다. 공동생활을 하라면 제 물건은 정리하고, 방을 함께 쓰는 사람의 잠을 방해하지 않겠습니다. 누군가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면 들어 줄 수도 있습니다. 다만 제 마음이 틀렸다고 말하는 일에 선뜻 고개를 끄덕이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믿음이 다른 사람을 무조건 미워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듯, 저도 있는 그대로 존중받고 싶습니다.
열나흘 뒤에는 제 가게로 돌아가 밀린 예약을 정리하고, 미처 완성하지 못한 도안을 마저 그릴 생각입니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이곳에서 만난 사람들과도 좋은 기억 하나쯤은 가지고 나가고 싶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제 말투가 건방지고 제 모습이 불량해 보일 수 있겠지만, 저는 약속을 어기거나 남의 비밀을 함부로 퍼뜨리는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습니다. 제 소개를 마지막으로 한 줄 더 적자면, 저는 겁이 없어서 웃는 사람이 아니라 겁이 날 때 먼저 웃는 사람입니다. 그 정도는 알아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문서 열람 안내
이 문서는 창작 세계관 속 등장인물의 자기소개서입니다. 입소자의 개인적인 진술은 시설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구휘의 비밀 일기
입소 1일 차 · 소등 이후 · 제출하지 않은 기록
입소 첫날. 여기 와서 제일 먼저 한 생각은 도망치고 싶다는 거였다. 두 번째는, 저 여자 누구지? 였고. 솔직히 두 번째 생각이 훨씬 오래갔다.
흰 티셔츠를 똑같이 입은 사람들 사이에서 혼자 반듯하게 앉아 있었다.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안내문을 읽을 때마다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딱 봐도 범생이. 말 걸면 규칙부터 읊을 것 같아서 속으로 변호사님이라고 별명까지 붙였다. 그런데 예배당에서 눈이 마주쳤을 때, 그 애가 아주 잠깐 웃었다. 남들 눈에는 안 보였을 만큼 작게. 그 순간 머릿속에서 준비해 둔 비꼬는 말이 싹 사라졌다. 젠장.
식당에서 일부러 옆자리에 앉았다. 반찬을 하나 슬쩍 밀어 주며 맛없다고 투덜댔더니, 그 애는 내가 싫어하는 반찬만 골라 놓은 걸 보고 웃음을 참았다. 조용한 애인 줄 알았는데 사람 놀리는 눈을 하고 있었다. 나만 알아챈 것 같아서 괜히 기분이 좋아졌다. 물컵을 건네다가 손끝이 스쳤을 땐 아무렇지도 않은 척했지만, 사실 그 뒤로 컵을 어느 손에 쥐고 있었는지도 기억이 안 난다.
저녁 회개 일지에는 오늘 품었던 불순한 생각을 쓰라고 했다. 종이를 한참 내려다보다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려 노력했습니다’라고 적었다. 거짓말은 아니다. 적응하려고 엄청 노력했으니까. 자꾸 그 애 쪽으로 돌아가는 고개를 바로잡느라.
이름도 아직 제대로 못 물어봤다. 좋아하는 음식이 뭔지, 왜 여기에 왔는지, 웃을 때 왜 입술을 꾹 누르는지 궁금하다. 열나흘만 버티고 나가려고 했는데, 벌써 열나흘이 너무 짧게 느껴진다. 이런 말은 누구한테도 못 한다. 특히 그 애한테는.
내일은 성경책 사이에 쪽지를 끼워 볼까. ‘범생아, 여기서 나가면 커피 한잔할래?’라고. 아니, 너무 티 나나. 내가 먼저 꼬셔 놓고 진짜 대답을 들으면 어쩔 줄 모를 것 같다.
아, 망했다. 첫눈에 반한 것 같다.